<맹개술도가> 박성호 이사
육지 속 작은 섬. 안동 맹개마을을 달리 이르는 말이에요. 얕게 굽이치는 낙동강 줄기를 트랙터나 배로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속세와 유리된 듯한 곳이지요. 맹개술도가는 이곳 맹개마을에서 밀밭을 경작하고 술을 만드는 생산자입니다. 퇴계 선생이 반할 만한 고고한 자연 속에서 술과 추억을 빚으며 살아가는, 맹개술도가 박성호 이사를 만나 삶과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맹개술도가’는 무슨 뜻인가요?
약 500년 전에 퇴계 선생님이 맹개마을의 바위를 보며 ‘경암’이라는 시를 남기셨고, 또 부근에서 어릴 때 추억을 생각하는 ‘미천장담(彌川長潭)’이라는 시를 지으셨어요. 여기서 넓은 천이라는 뜻인 미천(彌川)의 경상도말 ‘맨강’이 지금의 ‘맹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름이 약간 촌스러운 느낌이 나기도 해서 다른 이름을 붙여볼까 했는데, 마을 분들이 맹개라고 부르는 것이 정겨워서 이 이름을 그대로 살려서 브랜딩 하기로 했어요.
맹개마을에 정착하게 된 히스토리가 궁금해요.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했는데, 도심에서 약간만 벗어나도 전원에서의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참 부러웠어요. 공부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서 IT관련 사업을 하며 정말 바쁘고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남에게 간섭 받지 않으면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이 살고 싶어지더라고요. 새로 정착할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우연히 들른 도산서원에 반하였고, 이 곳 맹개마을을 발견하고는 고민 없이 바로 이주를 결정했어요.
맹개마을 진입을 위한 필수 운송수단인 트랙터
노동력을 최대한 줄여서 밀 농사를 짓는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왔을 때 마을 분들이 밀 농사를 약간씩 짓고 있어서 자연스레 밀 농사를 계획하게 되었는데요. 막상 농사를 하려고 보니 여러 명의 사람과 기계, 그리고 농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싫었어요. 그러한 과정을 벗어나기 위해 이주했는데 굳이 많은 노동력과 기계나 약을 사용하며 농사를 지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아름다움을 해치는 비닐하우스 같은 것도 쓰고 싶지 않았고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우리 밀 살리기’ 활동을 하는 여러 선배님들께 조언을 구하면서, 약을 치지 않고 혼자 씨 부리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이후 수확까지 가능하도록 밀 농사를 계획하고 밀 수확 후에는 이모작(후작)을 통해 메밀을 만들 수 있도록 했고요. 지금은 밀밭이 3만평정도 되는데 100% 유기농으로 수확하고 있고,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저 혼자 다하고 있습니다.
맹개마을에 대해 설명하는 박성호 이사
밀로 술을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밀 농사는 재미있고 보람찼지만 돈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어요. 8개월간 열심히 농사를 지어 처음 얻은 수익이 서울에서의 한 달 월급보다도 훨씬 적었으니까요. 그 무렵 저희 밀밭과 메밀꽃이 예쁘다며 찾아오는 분들이 조금씩 생기면서 민박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만든 밀을 어떻게 더 가치 있게 소비할 것이냐를 고민하던 중에 밀로 소주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제가 와인 소믈리에이기도 하고, 양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한국 소주는 보통 쌀로 만들기 때문에 밀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 처음에는 의문이었지만, 서양에서는 보리나 밀로 증류주를 만드니까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연구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안동소주의 대가이신 박재서 명인과 조옥화 명인께 조언을 구하며 개발하게 되었죠.
‘진맥소주’는 어떻게 나온 제품명인가요?
원래는 이름을 ‘맹개밀소주’로 하려고 했어요. 밀소주 연구를 계속 하던 중에 수운잡방이라는 고서에 진맥(밀)으로 만든 소주인 진맥소주가 있었다는 것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밀소주를 연구개발하며 의구심과 고민이 많던 때에 수운잡방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어요. 밀로 만든 소주라는 게 뿌리가 없는 술이 아니었구나 하고요. 이름도 진맥소주로 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안동 진맥소주 40, 53 제품
진맥소주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요.
통밀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밑술을 담그고, 덧술을 하여 발효해요. 가급적 노동력을 적게 들이기 위해 주재료인 밀은 분쇄한다든가 하는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고 통밀을 그대로 쓰지요. 발효액을 동관증류기로 2회 상압 증류하여 낸 원주를 6개월에서 1년간 숙성하여 완성하고 있어요. 과정 자체는 일반 술 만드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진맥소주의 풍미와 향을 좋아하는 팬층이 두터워요. 처음부터 맛의 방향성이 정해져 있었나요?
사실 양조의 기본적인 기술은 꽤 단순하다고 생각해요. 위스키의 경우도 양조장마다 기술적으로는 거의 유사하지만 저마다 다른 맛을 가지고 있잖아요.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부분에 의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그 미세한 1~2%의 차이가 캐릭터를 만든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제 술이 부드럽지만 스파이시하고, 레몬이나 오이, 참외 같은 약간의 시원함이 배어있는 캐릭터를 갖추길 바라며 만들어요.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원하는 맛과 향이 조금씩 구현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연 속에 조성한 지하 술 저장고
저장고에서 설명 중인 박성호 이사
국제 주류품평회 수상 경력이 화려해요. 기분이 어떠세요?
진맥소주는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바라보고 시작한 것이라 국제대회에서 평가를 받아보고 싶었어요. 이왕 도전하는 거 가장 명성 있고 큰 대회인 샌프란시스코 주류품평회에 작년부터 출품을 해보았죠. 그 결과 영광스럽게도 진맥소주 40으로 2년 연속 골드 메달을 수상했고요. 3년 연속 골드를 받게 되면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는데, 내년에도 도전을 해서 한국의 밀소주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알리고 싶어요. 또 올해에는 가장 우수한 출품작에 주어지는 더블골드 메달을 진맥소주 53과 오크 숙성 제품인 ‘시인의 바위’가 받게 되어 더더욱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런던 주류 품평회에서도 진맥소주 53이 골드를, 진맥소주 40이 실버를 받았는데요. 모두 세계적으로 위신과 명망이 있는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정말 기뻤어요. 한국 소주 생산자로서 자부심을 많이 느꼈습니다.
진맥소주를 오크통에 숙성한 시인의 바위
이제 막 양조에 뛰어든 젊은 세대에게 한 마디 전하자면?
아직까지는 시중에 나오는 술의 편차가 워낙 컸기 때문에 경쟁이 세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정말 경쟁이 치열해질 듯해요. 고객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술에 대한 평가가 엄격해지면서 무엇보다 퀄리티가 중요해진 때가 온 것 같아요. 이런 시장에 대비하여 젊은 양조인들이 좋은 퀄리티의 술들을 많이 내줬으면 좋겠어요. 젊은 친구들은 감각도 글로벌하고, 생각에 대한 제한이 크지 않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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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보고 왔어요! 그 비싼 술이 바로 저 술인 모양이군요! 나도..맛보고 싶당.. 2022-12-05 16:03:39
밀농사까지 지으시는 군요 멋지네요 2022-12-05 16:35:04